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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아휴‥‥‥ 이렇게 복잡하고 처참한 살륙의 장면을 구경하려고

내가 여기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이제 그자는 우리 천산파와도 불공대천지원

수가 되었는데, 단지‥‥‥ 단지 내가 무술 실력이나 재간이 변변치 못해서 무예계를 위해서 아

무런 힘도 될 수 없으니 원통한 노릇이지.”연비도 아가씨의 딱한 사정 앞에 뭐라고 말을 해

야 좋을지 몰라 한참 동안 망설이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꽤 오랜 침묵이 흐르고 나서

연비는 가까스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아가씨, 그런 섭섭한 말씀일랑 하시지 마십쇼. 천산

파에는 무예계에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산지(穿山指)라는 놀라운 수법이 있잖습니까

? 또 아가씨는 무예계의 봉이라 일컫는 분이시니 천산파의 위신과 명망을 부흥시키실 중대

한 책임이 오로지 아가씨의 두 어깨에 지워져 있습니다. 아예, 그런 절망적인 말씀은 하시

지 말고 용기를 내십쇼.”사마림 아가씨는 감격해 마지않았다.비록 연비라는 청년이 하는 말

은 자기의 가장 아픈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말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

에서 이렇게 솔직한 말을 자기에게 해줄 사람도 이 청년을 제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

다.’이 젊은 친구와 이렇게 마음이 통하고 가까워지다가는?’웬일인지 아가씨는 자기도 모

르는 사이에 이런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라 다정 다감한 기운이 넘치는 시선으로 유심히

연비의 얼굴을 쳐다봤다.아가씨가 두 눈을 쳐드는 순간, 공교롭게도 별처럼 또랑또랑하게

반짝이는 젊은 친구 연비의 시선도 아가씨의 얼굴을 유심히 응시하고 있었다.네 개의 젊은

시선들이 마주쳤다. 더군다나 사나이의 정열이 훨훨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연비

의 시선은, 아가씨의 눈동자 위에서 좀체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아가씨의 가슴속

은 별안간 거센 파도가 밀려들 듯 마구 출렁댔다. 두 볼이 화끈 달아 올라서 새빨개졌다.

아가씨는 부끄러움을 못 이겨 금시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그러나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었으랴!고개를 푹 수그리는 순간, 아가씨는 자지러지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질겁을 해서 몇 발자국을 뒤로 물러섰다.알고 보면 아가씨가 부끄러움을 못 견디어 고개를

수그렸을 때, 난데없이 새빨간 옷을 입은 어떤 중년 여자 하나가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방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그 중년 여자의 얼굴은 서릿발이 뻗쳐

나는 듯 싸늘하기 비길 데 없었고, 칼끝같이 매서운 눈초리로 두 젊은 남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이때, 연비도 거기 서 있는 중년 여자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