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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다.”아휴! 그러면 우리는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잔 말이오?”매약화 아가씨가 선

뜻 대답했다.”죽으면 제일 좋죠! 나는 무슨 낯짝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한다죠?”청년은 힐

문이나 하듯 갑자기 언성을 높여 물었다.”아! 깜박 잊었소! 아가씨의 성씨는 뭐라 하시오!”

“나‥‥‥ 나요? 아! 그건 묻지 말아요! 내게 한 가지 부탁이 있는 데 들어 주시겠어요?””소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뭣이든 약속하겠소!””좋아요!”매약화 아가씨는 앵도같이 새빨간 아랫

입술을 잘강잘강 깨물었다.”나는 곧 죽어 버리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 이 한 자루 칼로 나의

시체를, 특히 얼굴을 북북 그어 주세요. 그래서 내가 누군지 세상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

록 해주세요! 네?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어요?”청년은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그건 무슨 까

닭이오?”매약화 아가씨는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 까닭을 모르시나요? 그 못된 놈

의 무술 재간이나 실력은 우리 두 사람보다도 월등 고수급인데도, 우리를 죽여 버리지 않고

이런 악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그놈이 의도하는 바가 어디 있는지 명백하지 않아요?

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두 사람과 우리들의 문파(門派)에 모욕을 주자는 것인데, 거

기에는 또 다른 음모도 숨겨져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세상사람에

게 알리기 싫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첫째로 나 자신의 모욕과 수치를 씻어 버릴 수 있

고, 둘째로는 우리 문파의 모욕을 면케 할 수 있고, 셋째로는 그 못된 놈의 또 다른 음모를

깨뜨려 버리는 길이 되지 않겠어요?”준수하게 생긴 청년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

를 끄덕끄덕했다.”아가씨의 생각은 지당하오. 그러나 바로 이 몇 가지 까닭 때문에 우리

는 죽을 수 없는 것이오. 만약에 이대로 개죽음을 한다면 진상을 밝힐 도리가 없게 될 것

이오. 우리가 억울하게 보람없이 죽어 버린다면 영원히 무예계의 웃음 거리밖에 아무것도

안 될 것이오. 죽는다는 생각은 빨리 단념하시오! 역시 우리는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든지

살아서 나가야 되오! 저 못된 놈을 찾아 원수를 갚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니겠소?”

매약화 아가씨는 평생을 두고 쌀쌀스럽고 외롭고 오만했으며 결심이 가장 강한 여자였

다.그러나 이 순간에는 아무런 주견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한없이 나약한 태도로

연방 한숨만 내쉬며 간신히 대꾸했다.”하지만, 석실의 문을 어떻게 열어 젖힌다는 거

죠?”청년은 선뜻 혼자말처럼 중얼댔다